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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의미와 의의

인문학과 철학

by HtoHtoH 2025. 10. 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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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길: 의와 용기의 관계

[논어] <양화> 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삼는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비록 생각은 짧지만 용감하기로 유명한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군자는 용맹을 숭상합니까?"라고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이다. 정사에 밝고 내심 용맹하다고 자부하던 자로는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답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자로는 예수의 제자 중에 다혈질적인 품성의 베드로를 연상하게 한다. 공자의 답은 의외였다. 군자는 용기보다 의를 더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말한다. "군자가 용기는 있으되 의가 없으면 난을 일으킬 것이며, 소인이 용기는 있으되 의가 없으면 도적질을 하게 될 것이다."

 

'의'의 의미와 의의
'의'의 의미

인, 지, 용과 의의 우위: 공자의 가르침

공자는 군자가 지녀야 할 세 가지 도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도 그 세 가지 도에 대해 무능한 자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어진 사람은 근심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됨이 없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인, 지, 용은 공자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용맹이 의를 앞서지는 못한다. 더구나 의가 없는 용맹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도적으로 돌변할 만큼 해로울 뿐이다. 의를 모르고 용기만 백배한 사람을 군자라고 말할 까닭도 없겠지만, 의를 무시한 용기는 전쟁을 일삼는 호전주의자에 불과할 것이다. <양화> 편에서, 공자보다 31세 연하이며 위나라 출신으로서 언어에 뛰어난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여러 가지 미워하는 것들을 설명하면서 "용기만 있고 예가 없는 자를 미워한다"라고 대답했다. 이 또한 용기는 예를 갖춘 것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자는 용기를 인과 관련하여서도 설명한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용기는 인과 예, 그리고 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의 팔복과 의의 갈망

한편 예수는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한다.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 다. 저희가 배부를 것이다." 마치 이 말은 공자가 제자들을 향해, "군자는 천하에 해야만 하는 것도 없고,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없으며, 오직 의에 따라 살뿐이다."라고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이는 의에 준하여 살기만 한다면, 꼭 하지 못해서 조급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의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말은 의를 지닌 자들에 대한 격려다. 예수도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으로서 먼저 의를 꼽았던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의는 '팔복' 가운데서도 두 번씩이나 강조할 만큼 중요한 덕목이다. 정의가 무너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선취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 것이 의(헬라어로 다카이오스)였다. 예수가 말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이는 신국의 통치와 신국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며 천국의 정의와 다름 아니다. 정의가 무너진 천국은 있을 수 없다. 예수나 공자 모두 정의가 무너진 시대에 살았고, 가장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 정의의 회복이었다. 물론 예수의 정의와 공자의 정의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을 거역하는 불의에 근거한 권력과 통치를 이들은 모두 용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맨자와 바울: 의의 계승과 심화

공자의 적통을 잇는 사상가인 맹자가 의를 '수오지심', 즉 나쁜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으로 해석했듯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의를 지닌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의는 하늘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마음의 바른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는 공자가 꿈꾸는 이상국가의 초석이 된다. 한편 예수가 강조한 의를 잘 이어받아 설명한 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맹자가 공자 생전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었듯이 사도 바울도 예수가 활동할 당시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가장 방대하게 신학화한 인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화와 희락이 넘치는 곳이었다. 의가 없는 평화가 있을 리 없고, 의가 없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자와 아우구스티누스, 양명과 아퀴나스의 대화 가능성

공자의 사상이 맹자를 거쳐 주자에게로 이어진다면, 예수의 사상은 바울을 거쳐 아우구스티누스에게로 이어져,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을 저술하게 된다.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다소 이원론적인 신국 개념을 전개하지만, 불의가 완전히 사라진 신의 의로운 통치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하늘의 뜻을 거슬리는 역천이 아니라 순천을 강조한 공자의 기대와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다. 주자와 아우구스티누스가 다소 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주자의 좌파인 양명은 중세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상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잇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주자나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하늘과 땅이 대립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일원적 관점에서 조화와 일치를 추구했던 사상가들이다. 이들이 서로 대화가 가능한 부분은 인간의 천부적 양심과 마음의 중요성을 한껏 부각시켰다는 데 있다. 양심의 법, 곧 자연법으로서의 이성의 법을 따르면 하늘의 법을 따르는 이치와 통한다는 것이다.

 

난세 속 공자와 예수: 의의 외침과 시대적 맥락

공자와 예수는 난세를 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의를 외쳤다. 예수는 1세기 팔레스타인의 식민지 상황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민족적 갈등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이미 같은 유대민족 내부에도 헬라화되어 친 로마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세리포스와 티베리아와 같은 도시와 순박한 갈릴리 주변 시골 간의 정서적인 갈등의 상황에서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로마인들이 헤롯을 중심으로 지배한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로마의 법체계하에서 땅을 상실한 소농인들이 소작인으로 전락하여 이주를 하거나, 아니면 사회 최하층의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거지 혹은 강도 떼로 전락해 갔다. 이를 참다못한 일부 갈릴리 사람들은 세리포스로 가서 무기를 탈취하여 반란을 일으키거나,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자고 민중을 선동하다가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리고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들은 배부를 것이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공자나 예수 모두 당대에 의의 승리를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들 이후의 역사는 언제나 의의 편이었음을 충분히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기에 급급할 것인가, 아니면 의를 먼저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익이 눈앞에 보이거든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말이나,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는 공자의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보자. 의를 본질적 바탕으로 삼는 군자의 길은 죽어도 영원히 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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