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예수가 풍류객이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보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들이 풍류객이 아니었다고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공자가 시와 음악을 즐겼고 예수 또한 시인으로서 선사 못지않았다. [논어]에 의하면 공자는 구구절절이 예와 악을 말했고 시와 음악을 즐겼다. 예수도 [복음서] 곳곳에서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초연할 것을 말했다. 공자는 한때 제도적 정치권에서 정치행위를 하기도 했지만 나라가 도를 버리고 혼탁해지자 정사를 떠나 열국을 주유하면서 13년간의 유랑생활을 했으며, 예수는 비록 30세라는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와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하늘의 뜻'을 깨닫고는 그 길로 갈릴리 주변 농촌을 떠돌며 민중을 교화하기 시작한다.
일찍이 [시경]과 [서경] 등의 고전을 두루 섭렵한 공자는 "300수를 한마디로 요약하여 '사무사' 라고 이르면서, 인간 행동의 출발점을 삿됨이 없는 '순수함'에서 찾았다. 예수 또한 천국입성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로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강조했다. 순수와 동심의 세계는 낭만적 풍류객들이 지니는 공통된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공자와 예수는 낭만주의자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자가 주나라의 찬란한 문화와 예악을 찬탄하고 기렸던 것처럼, 예수 또한 도래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낭만적 세계를 그의 시적 은유 속에서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이미 자연 속에서, '들에 핀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를 하나님이 기르시는 것을 보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두려움 없는 오늘의 즐거운 하루를 살라고 권하고 있다. 합리주의적 이성은 분명히 내일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해야 하지만, 예수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낱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 고 말한다.
이는 "하늘의 덕이 내게 있으니, 환퇴라는 사람이 나를 어찌 해치겠는가?"라고 했던 공자의 배짱이나, 빌라도의 법정에서 "진리가 내게 있으니, 무엇을 두려워 하리요?"하며 떳떳이 서 있는 예수의 자태에서도 진리 앞에 비굴해지지 않는 멋지고 당당한 풍류객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화랑도들이 풍류를 즐기면서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풍류객은 도피적이고 연약한 존재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위험이나 속박 앞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정신이야말로 풍류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나 예수는 시대적 제약을 뛰어 넘어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비판적이고 이상적인 자유정신을 사회, 내지는 공동체 속에 불어 넣고자 했다.
미혼 청년으로서의 예수는 결혼과 가정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에 있었지만, 당시의 유대 풍토와 정치 사회적 배경은 예수가 그렇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이는 공자가 살던 시대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들 두 정치·종교적 사상가는 어떻게 낭만적 분위기 속에서 시대를 개척하고 이끌어 가고자 했는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들이 호탕한 낭만적 풍류정신을 [논어]와 [복음서] 속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공자는 인생을 풍류에서 완성하고자 했다. 이것은 그가 "시에서 홍기하고, 예에서 일어서며, 풍류에서 완성된다" 고 했던 짧은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성어악'이라고 할 때의 '악'은 일차적으로 음악을 말하지만, 음악에는 이미 시가 내포되어 감미롭고 멋있는 조화가 깃들어 있으니, 풍류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는다. 공자에게서 예악의 정신은 나라를 형성하는 기초가 됨과 동시에 완성의 경지다. 공자는 예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예절이다, 예절이다, 말하지만 어디 옥과 비단만을 말하겠는가? 음악이다, 음악이다, 말하지만 어디 종과 북만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이 말의 뜻은 예절에는 옥과 비단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니 내면에 공경하는 바가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고, 음악에는 종과 북이 필요하지만 그것 자체보다는 소리의 조화를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는 예악은 '공경'과 '조화로움'이라고 요약하여 말할 수 있다. 예가 없으면 나라가서지 못하고, 조화로운 음악과 풍류가 없으면 그 나라의 문화가 뒤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술적인 인생과 국가의 완성작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풍류정신은 [논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우선 첫 편의 학문하는 기쁨과 벗과의 만남에서 드러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배우는 기쁨도 좋지만 벗과의 사귐도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에게서는 배움을 통한 앎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알고 있다는 '지식'은 지식이나 도리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즐거워하는 것이 더 낫다" 는 것이 공자의 지론이다. 인식도 중요하지만 인식을 넘어선 가치 있는 존재의 차원에 더욱 중요성을 두고 있다. 인식이 시작이라면 존재는 완성인 셈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무엇보다도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즐거움 없는 인생을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즐거움은 꼭 부유한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자는 가난하지만 즐거워하며 사는 자를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자' 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안빈낙도'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일에도 종류가 있다. 무엇을 즐기며 살라는 말인가? 즐기는 것도 유익한 것이 있고 해로운 것이 있다고 공자는 충고한다. 그 이롭고 해로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공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각각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 유익한 즐거움을 요약해 보면 예약의 정신, 이웃의 선함에 대한 칭찬, 현명한 벗과의 사귐이다. 반면에 교만, 방탕, 향락에 빠지는 즐거움은 결국 해가 된다는 것이다. 먼저 예악의 즐거움이 유익하다고 했는데, 공자는 제나라에 갔을 때, 순임금 때부터 전해 오던 음악인 소를 듣고 석 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고 고백한다. 공자는 이 소의 소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선하다"그야말로 음악의 진선미를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소리가 아름답다고할 때의 '미'를 주자는 "풍류의 소리와 모양이 성대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순임금 때의 소에 비하여, 무왕의 음악인 "무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선하지는 못하다" 고 평한다. 공자가 음악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말한 것이지만, 이는 인생의 멋과 조화를 풍미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의 풍류정신과 절대 의존의 신앙
예수의 풍류정신을 살펴보자. 예수는 풍부한 감성와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독일의 낭만주의적 경향의 신학자 슐라이엘마허는 '종교'를 '절대 의존 감정' 이라는 말로 표현했듯이,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절대 의존 감정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수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존 감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가난하고 척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과단성 있게 '천국 복음'을 외치면서 유랑의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절대 의존 감정'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세 가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절대'라는 말과 '의존'이라는 말, 그리고 '감정'이라는 말이다. 신앙의 세계는 절대의 세계다. 예수가 진정한 풍류객일 수 있었던 것은, 공자가 철저하게 '하늘의 도'와 천명'을 믿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세계를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예수는 그러한 절대적 신뢰관계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까지 '진리'되신 하나님을 '의존'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정신세계는 합리적 이성보다는 어쩌면 초이성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인간-사랑이라는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사랑을 실천한 감성의 사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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