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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덕치와 예수의 사랑정치

인문학과 철학

by HtoHtoH 2025. 10. 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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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덕치와 예수의 사랑정치
공자의 덕치와 예수의 사랑정치

공자의 정치철학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신정정치를 꿈꾸었다면, 공자는 하늘이 부여한 덕을 실현하기 위한 덕치주의를 꿈꾸었다. 덕치주의는 법으로 다스린다는 법치주의와 다르다. 공자는 덕치주의의 이상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성을 정치적 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성을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린다면 백성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도 바로잡는다." 공자는 형벌을 위주로 하는 법치보다는 도덕적 감화력에 호소하는 덕치의 실현을 말하면서 하늘이 부여한 덕을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법치보다 뛰어나다고 말한다.

 

북극성의 비유로 본 덕망있는 지도자의 자리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덕망 있는 지도자는 마치 북극성과 같다고 공자는 비유하여 말하기도 한다. "덕으로 하는 정치를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음으로써 모든 별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고 도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사실 제경공은 당시에 임금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른 인륜의 도리를 지키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는 이치와도 같을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도리를 바르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각각이 처한 위치에 따라 그에 해당되는 정사가 있음을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위에 해당하는 정사를 꾀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각각의 분수에 맞는 일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도리를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정명론의 중요성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정명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이를 명분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각자의 이름에 걸맞고 알맞은 직책을 바르게 수행할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정사에 밝은 자로가 공자에게 묻는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겠다." 이 말에 자로는 공자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판단하고 그런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이에 공자는 자로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명분이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고,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와 음악이 흥성해지지 못하고, 예와 음악이 흥성해지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이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러한 명분론은 이름과 직책에 알맞은 역할을 각자가 바르게 수행함으로써 백성 모두가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예수의 평화정치학

예수의 정치학은 우선 평화를 위한 정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평화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비는 기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평화의 건설을 위한 유일한 무기와 방편은 비폭력적 아가페 사랑이었다. 그러기에 2천 년 전의 이스라엘 땅 갈릴리의 예수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면서 오늘도 세계 역사에 평화주의의 실현자로 강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로마의 정치적 지배와 폭력 속에서 예수는 평화를 외치다 죽었지만, 일개 민족의 단순한 정치적 해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근원적 해방과 평화를 위해 압제의 모든 수단에 저항했던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압제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율법이든 관습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그 어느 것에도 '진리'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저항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동시대의 규범적 틀을 넘어선 진보적 인간 해방자이며 개혁자로서의 정치적 소외자이기도 했다.

 

공자와 예수의 정치 접근방식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덕치주의에 입각한 국가의 정치적 개혁을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예수와 그의 초기 제자들은 정치적 변혁보다는 새로운 대안 공동체로서의 천국-공동체를 형성해 가고자 했다. 그러나 공자나 예수 모두 '하늘의 뜻'을 따라 그 덕목을 실천하고자 했던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길에는 자기-비움이라는 엄격한 수련이 요구되었다. 예수의 제자 중 일부는 종래의 직업이나 자신의 가족마저 떠나고, 급기야 소유마저도 포기하면서 방랑 걸식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랑 공동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속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임박하게 도래하리라고 믿었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사꾼과 비슷하다.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팔아 그것을 샀던 것'이다. 이는 마치 가난한 날품팔이가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이 신기하고 기쁜 일이며, 보석 장사꾼이 값진 진주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기쁨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서 '하나님의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요순시대와 같은 찬란한 문화와 덕치가 실현되는 그런 사회 이상의 이상국가였을 것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길

공자가 인의 정치학을 펼쳤다면, 예수도 사랑의 정치학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예수의 새 계명에서 드러나듯이, '서로-사랑'이었다. 일방적인 사랑은 불완전하다. 모두 함께하는 서로의 사랑, 이것이 불완전한 지구촌 한구석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될 것이다. 공자나 예수 모두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비우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 가진 재능을 서로 나누며, 거룩한 공동체적 사귐을 통해 이상적 국가, 즉 지상천국을 실현하고자 열망했다는 점에서 서로 상통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공자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식으로 정치 지도자들의 마음 자세를 강조했다면, 예수는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 타락하고 완고한 지도자들보다는 주변에 있는 민중들을 교화하고 훈련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공자가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한 하향식 접근 방식을 택했다면, 예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한 상향식 접근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와 예수, 그들은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온유하고 겸손한 미덕을 갖춘 자들로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하늘과 인간에 대한 공경을 중심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정의와 평화 그리고 자비의 나라를 만들고자 힘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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