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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두 길 - 신의와 피스티스의 만남

인문학과 철학

by HtoHtoH 2025. 10. 24.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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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신뢰의 존재로서 인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믿음을 가진 존재다. 산소나 돌과 같은 물질은 화학적이거나 물리적인 법칙을 따르며, 나무와 꽃들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이면서도 생물학적인 자연법칙을 따르고, 나비와 벌 등을 포함한 짐승들은 물리와 화학 그리고 생물학적인 법칙 외에도 동물적인 본성을 지닌다. 이에 비해 인간은 이 모든 법칙들 외에도 이성적인 판단과 함께 믿음이라는 독특한 정신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이성과 감성적 판단력 외에도 신뢰라고 하는 신앙적 차원의 감정을 지닌 존재다. 공자가 말하는 믿음과 예수가 말하는 믿음은 분명 다른 면이 있다. 공자가 말하는 믿음은 인간적 신뢰를 의미하고, 예수가 말하는 믿음은 신앙적 차원의 믿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 개념이 만나 대화가 가능한지 알아보자.

 

공자의 '신'

믿음을 뜻하는 한자어 '신'은 사람을 뜻하는 '인'자와 '입' 그리고 상형문자로 '바늘을 뜻했던 것 신자를 합하여 이루어진 문자이다. 그 의미는 사람이 말을 함에 있어서 미덥지 못한 말, 즉 거짓을 말했을 때는 형벌을 받겠다는 것을 맹세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경우에서 믿음의 문제는 벗과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미더움'을 강조하기 위해 설명되고 있다. 그 믿음은 특히 말과 행동의 신실함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말에 있어서의 신의와 행동의 결실"은 군자나 소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되고 있다. 제자 자장이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뜻을 펼칠 수 있는지 그 행실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말이 진실하고 미더우며, 행동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뜻을 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진실하지 않고 미덥지 않으면서, 행실이 독실하지 못하고 공경스럽지도 않으면, 비록 자기 마을에서도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이 같이 언어를 매개로 하는 믿음으로서의 신의와 그 경건한 행위로써의 인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정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생명력이 짧다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의 기초로서 신의

공자는 제자의 도리를 말하면서, 효도나 인 이외에 "행실을 삼가며 떳떳이 하면서도 미더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미더움'이란 말은 믿음직해야 한다는 뜻으로서 거짓이 없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더움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통용되는 덕목이다. 이는 정사를 도모하는 위정자가 백성들에게 하는 말에도 미더움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벗들과의 사귐에서도 말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자하의 말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일은 직접 국운과 관련되는 것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한 번은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물은 적이 있다. 이에 공자는 "먹을 것과 병력을 풍족히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주는 것이다."라고 하자, 자공이 이 세 가지 중에서 부득불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병력을 버려야 한다"고 했으며, 그다음은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고 했다. 신의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믿음의 두 길 - 신의와 피스티스의 만남
신의와 피스티스의 만남

예수의 '피스티스'

예수가 말하는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로서 신뢰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대부분의 경우,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이나 인격을 신뢰한다는 '믿음'이나 '의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믿음, 즉 피스티스에 관한 고전적 헬라어의 용례로서 가장 먼저 사용된 단어는 '피스토스'로서 '의지하는', 또는 '순종하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신뢰할 수 있는' 또는 '성실한', '의지할 수 있는'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 단어의 반대 개념으로서, '믿을 수 없는'이라는 '불신'의 뜻으로의 부정형은 '아피스토스'이다. 이 개념의 동사 형태는 '피스튜오'로서 '의지하다', '믿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고전적 용례로서의 '피스토스'는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들에게도 적용된 용어였지만, 신약성서에서 인간이 신을 의지하거나 예수의 말을 믿고 의지하는 내용으로 전용되었다. 이처럼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스는 성실함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반적으로 종교적 의미의 믿음이나 의지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서 안에서도 비종교적 의미의 성실성과 종료적-신앙적 의미의 믿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믿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수의 사례와 신뢰의 힘

여러 가지 다양한 믿음 가운데서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복음서]에서 예수의 치유 이적에 대한 확신으로서의 믿음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예수가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그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준 사례다. "백부장이 예수에게 이르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예수가 이르되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니 즉시 하인이 나았다." 이 밖에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한 장면이 나온다. "두 맹인이 예수를 따라가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가 이르되,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렇습니다 예수가 그들의 눈을 만지며 너희 믿음대로 돼라 하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이 밖에도 예수의 치유 이적행위와 관련한 추종자들의 믿음과 그에 따른 기적은 [복음서]에서 매우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두 믿음의 융합 - 신의에서 구원으로

고전적 경전과 성현의 가르침을 돈독히 믿고 배우기를 힘쓰고 좋아하라는 공자의 주장은 바로 인의예지에 대한 고전적 가르침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고 옛것을 좋아하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인의예지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결코 공자가 가르친 그 높은 이상을 실천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이상은 바로 예수가 설파한 새로운 계명으로도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경천애인으로 표방되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는 공자가 "도를 돈독하게 믿으라"고 했던 말이나, 배움과 실천 그리고 진실과 신의를 늘 가르쳤던 공자의 네 가지 교훈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공자가 "성실과 신의를 위주로 하라"고 했던 말과, 예수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고 했던 말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미더움이 인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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