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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예수의 '예' - 인과 아가페의 조화로운 질서

인문학과 철학

by HtoHtoH 2025. 10. 2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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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개혁의 경계 - 공자의 예 사상

공자의 예는 공자사상의 핵심인 인을 실천하는 모습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혁신이라는 시간적인 차이에서 빚어지는 보수와 진보가 마찰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논한 공자의 입장을 극단적으로는 보수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원인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당시에 공자는 혁신적 인물로 추앙받았었다. 우리는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전통에 대해 온건하면서 시대적 모순을 인과 예로 풀어보려고 한 개혁적 인물로서의 공자가 말한 예를 이해해야 한다. 공자의 예는 그의 제자들과 나눈 담화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공자는 예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논어]에 나타난 예의 담론을 살펴보면, 제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효와 형제 공경,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의 입장과 신하와 백성의 도리로서의 예 등으로 구분된다. 이를 종합하면 '약지이례'라는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공자의 사상은 인을 기초로 하지만 예로써 요약된다는 것이다.

 

군자의 길 - 학문과 예의 조화

공자가 이상적 인간으로 내세운 군자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예로써 단속한다'는 '약지이례'는 예로써 요약하거나 예로 집약된다는 뜻이 있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군자의 길은 학문과 예의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학문은 철학적이거나 자연과학적인 의미의 학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배움의 수련을 의미한다. 배우고 익히는 일과 그 배움을 실천함에 있어서 예를 갖춘다면 가히 군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자의 길이 배움의 길 외에 예로써 요약되는데, 과연 그 예의 실상은 무엇일까? 세간에는 공자가 봉건사상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강화시켰다는 비난과 함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비난이 유행어처럼 떠돈 적이 있다. 아직도 그러한 편파적인 사고의 여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를 먼저 이해한다면 그러한 극단적인 사고는 쉽게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와 예수의 '예' - 인과 아가페의 조화로운 질서
공자와 예수의 '예' - 인과 아가페의 조화로운 질서 - 인과 아가페의 조화로운 질서

변화하는 예의 정신 - 검소함과 공경심

또한 예절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공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삼베로 만든 관이 예법에 맞는 것이지만, 지금은 명주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그것이 검 소하기 때문이다." 삼베보다 명주로 만들기가 쉽기 때문에 검소하다고 하면서 전통적인 예법을 따르지 않고 대중적인 예법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검소함에 있었다. 그리고 임금에게 절을 하는 경우에는 고만하게 임금이 계신 마루에서 절하지 않고, 자신은 마루 아래에서 절하겠다고 말한다. 이렇듯 공자는 예절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물었으며, 공경심이나 검소함이 기준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공자의 공경심과 예절은 언어에서도 분명했다. "그는 향당과 같이 부형이나 종족이 모인 곳에서는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두려워하듯 말을 잘하지 않았고, 종묘와 조정에서는 말을 분명하게 하되 신중히 했다." 어른들 앞에서와 조정에서의 태도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공자는 복장에 관련된 예복이나, 제사, 음주의 태도, 잠자리, 상례, 임금과의 조우,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수레를 탈 때 등에 관하여 <향당> 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공경과 검소함을 기초로 하는 것들이었다. 공자는 "예와 음악에 있어서 옛 선진들이 즐겨하던 것처럼, 그리고 야인처럼 질박한 것을 원했다." 군자 같은 우아한 형식미보다는 예와 악에 관한 한, 야인처럼 질박한 검소함을 택하겠다는 공자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예수의 예 -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

예수에게서 예는 무엇일까? 예수의 예는 일차적으로 '하나님 공경' 이다. 그것이 다시 이웃 공경으로 나타난다. 예수가 가장 중시했던 사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듯이, 예수의 자비의 행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다. 공자가 인에 근거하여 예를 실천하듯이, 예수는 아가페-사랑에 근거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또는 이웃 섬김이라는 예를 실천한다. 물론 이웃 사랑 이전에 십계명에 기록된 것과 같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것을  함께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에게서 부모에 대한 개념은 당시의 전통적인 상식을 뒤엎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개념적 발상을 전환시키고 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부모요 형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다." 바울의 표현을 따라, '산 제사'라는 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 제사로서의 예 - 내면적 예배의 혁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강령을 '산 제사'라는 말로 요약한다. 마치 공자가 군자의 도리를 '약지이례' 라는 말로 요약했듯이 말이다. 예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는 하나님에게 양을 포함한 온갖 동물을 속죄의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성소에서 휘장이 찢어졌다는 표현과 함께 동물 희생 제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예수 자신이 하나의 속죄양이 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동물 제사는 중단되었다는 것이 성서적, 혹은 신학적 해석이다. 바울에게서 '산 제사'는 악한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일이다. 그 분별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절제'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을 헤아리는 절도'가 필요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생각에서의 절제와 믿음의 절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예절이라는 것이다.

 

조화로운 공동체의 비전 - 인과 아가페의 실천

사람들은 모두가 생활 속에서의 직분이 다르고, 공동체 내에서의 다양한 직책이 있다. 바울의 표현대로,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 공자가 예의 실천을 통하여 저마다 맡은 직분 속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듯이,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조화로운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다. 그 공동체의 실현은 받은 바 은사에 따라 섬기는 봉사의 일이나,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자선을 베푸는 일 등을 절도 있게 성실히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은 공자가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집을 나서면 어른을 공경하라"고 했던 것처럼, 형제 사랑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고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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