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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군자의 도와 성도의 삶

인문학과 철학

by HtoHtoH 2025. 10. 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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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마음가짐: 깨끗한 마음과 두려움 없는 삶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행복의 기준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깨끗하고 떳떳한 삶을 꼽을 것이다. 물론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가난해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행복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공자도 마음이 깨끗한 자가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말이 많고 따지기를 좋아하면서도 늘 걱정이 많았던 제자 사마우가 공자에게 군자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자 사마우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가 되는 거냐고 반문한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자신을 돌이켜 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어찌 염려하고 두려워하겠는가." 군자의 이상적 마음가짐에 대해 공자는 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 상태를 말하고 있다.

마음의 청결,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누구나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늘 떳떳하기에 근심이 없을 수 있으나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공자 자신도 거기에 이르기 매우 힘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자의 도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마음에 근심이 따르게 되고,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사리 판단이 어려워 자칫 미혹에 빠르지 되며, 스스로 용기 있는 자라고 하지만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선뜻 용기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 인, 용이 군자의 세 가지 도리라고 하지만, 공자 자신도 이 덕목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함을 고백하는데, 이는 공자의 겸양한 태도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솔직히 직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 인, 용의 도리와 공자의 겸양

그러면서 공자는 다른 대화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자는 하늘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공자의 '하늘 의식'과 관련이 있는 발언이다. 공자의 하늘 의식은 다분히 인격적인 측면이 있다. 비록 '하늘' 그 자체가 중성적 의미로 쓰였다고 하더라도, 땅을 딛고 사는 유한한 인간은 무한자, 또는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을 것이며, 그 경외감의 표현으로 공자는 하늘, 또는 천명을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공자가 제자 자공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점 더 살펴보자. 공자가 말했다. "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이에 자공이 물었다. "어찌하여 스승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탓하지도 않고, 아래로부터 배워서 위로 통달해 가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일 것이다.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군자의 도와 성도의 삶
군자의 도와 성도의 삶

하늘이 알아주는 군자: 공자의 천명 의식

공자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이미 공자는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화를 내지 않는 군자의 모습"과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무능을 걱정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아래로부터의 학문'인 예를 익히면서, 점차 도와 덕 그리고 인과 천명을 익혀가는 '상달의 도'를 터득하니, 주변의 칭찬이나 인정에 개의치 않고 떳떳이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위로 상달하는 학문의 과정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하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가며 예와 인을 실천하니, 어찌 하늘이 알아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은 순수의 거울이다. 인간이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를 행한다고 해도, 하늘은 속이지 못할 것이다. 투명하고 맑은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보듯이, 공자는 하늘이라는 거울에 자신의 일생을 비춰보며 살았을 것이다.

 

하늘의 거울과 내면 성찰의 길

이렇듯 공자가 생각한 하늘은 바로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얼굴'일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산 위에서 계속 말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자고로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없다. 오히려 구약성서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죽는다고 했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하나님의 얼굴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 바울도 우리가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때 곧 천국에 이르면 얼굴과 얼굴을 또렷이 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인간이 과연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투명하고 깨끗한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해도 그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 참된 자신의 모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외형적 조건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인간의 마음 역시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조삼모사 하는  어리석은 원숭이의 비유에서 보듯이, 인간의 마음에서 변함없고 한결같은 마음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와 하나님의 얼굴

예수는 '하나님의 얼굴'을 언급함으로써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 여백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천국의 입성을 보장받는 자일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웃음 짓는 하나님의 미소를 보았을 것이고, 그 미소 속에서 한없는 평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가교다. 하늘이 공자를 알아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예수도 공자처럼 하늘이 자기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지상의 사역을 감당하게 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늘이 공자를 세상의 목탁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던 위나라 국경의 벼슬아치의 말처럼, 예수도 세상의 '목탁'이 되었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얼굴

일제하의 민족 시인 윤동주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하고,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안녹산의 난으로 포로가 되었을 때, "나라는 망해도 산천은 남아, 도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고 읊었던 심정처럼,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던 선각자들의 맑은 정신은 역사라는 투명한 거울을 통해 미래의 세대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반사되어 빛나고 있다. 이렇듯 하나님은 역사를 떠나 있지 않다. 오히려 역사와 동행하며 다양한 얼굴을 내민다. 그 대표적인 얼굴이 예수의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때로는 가난한 갈릴리 농부의 모습을 반영해 주기도 했고, 울부짖는 환자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의를 행하지 않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분노의 모습을 띠기도 했고,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정성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예수의 표정에서 나타났듯이, 부단한 역사 속에서 '천수천안'의 얼굴로 나타나 구원과 심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빛나는 맑은 정신과 하나님의 얼굴

공자의 눈에 비친 하늘과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천량한 정신'으로 정의를 회복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동일한 '하늘'일 것이며, 이른바 양심세력이 만나는 '하늘'과 '하나님의 얼굴'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정의를 버릴 때, '하나님의 얼굴'은 찡그러질 것이고, 예와 인을 실현할 때에는 환한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복이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은 '역사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가 '내성외왕'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 상관없이 하늘과 땅은 그들에게 한없는 사랑의 미소를 보낼 것이다. '내성불구'의 길은, 곧 '내성외왕'의 길이다. 내면을 돌이켜 부끄러움이 없는 자, 그는 속이 거룩하여 밖으로도 왕 같은 삶을 누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군자와 성도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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