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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수송망: 확산의 한계와 순환계의 진화적 도약

생명과학

by HtoHtoH 2026. 1. 2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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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분자적 거래를 수행해야 하는 유기체다. O₂와 영양분을 흡수하고, 대사 부산물인 CO₂와 노폐물을 내보내는 과정은 단순히 신체 표면의 문제가 아니라, 개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참여해야 하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작고 비극성인 분자들은 확산(diffusion)을 통해 세포막을 넘나들 수 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확산은 치명적으로 느려진다. 확산에 소요되는 시간은 이동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는 물리적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포도당 분자가 100µm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1초가 걸린다면, 1mm를 이동하는 데는 100초가 소요되며, 1cm를 이동하는 데는 무려 약 3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은 모든 동물의 체형 설계에 있어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자연선택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모든 세포가 환경과 직접 맞닿을 수 있도록 신체를 얇거나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순환계를 통해 교환 기관과 심부 세포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가로지르는 액체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생명의 수송망: 확산의 한계와 순환계의 진화적 도약
순환계


1. 위수강: 순환계 이전의 원시적 분배 시스템

복잡한 순환계가 없는 동물들은 구조적 단순함을 통해 확산의 한계를 극복했다. 대표적인 예가 히드라와 같은 자포동물이다. 이들은 단 두 층의 세포층으로 구성된 체벽이 위수강(Gastrovascular cavities)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취한다. 위수강은 소화 기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물질을 신체 곳곳으로 분배하는 순환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히드라의 경우, 위수강 내의 액체는 단 하나의 구멍을 통해 외부 환경과 연결된다. 따라서 안쪽 세포층과 바깥쪽 세포층 모두가 액체에 잠겨 있는 셈이 되어 물질 교환이 용이하다. 소화는 위수강 내에서 일어나므로 안쪽 세포가 영양분을 먼저 흡수하지만, 세포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확산만으로도 바깥쪽 세포까지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해파리와 같은 종은 더욱 정교하게 분지된 위수강을 통해 거대한 몸체의 말단까지 물질을 수송한다.

플라나리아를 비롯한 편형동물 역시 고도로 분지된 위수강을 활용한다. 이들은 몸을 매우 납작하게 만듦으로써 표면적을 극대화하고, 내부 세포와 외부 환경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했다. 이러한 평면적 구조는 별도의 펌프 장치 없이도 확산에 의존해 원활한 물질 교환을 가능케 한다.


2. 개방순환계와 폐쇄순환계의 전략적 선택

세포층이 두꺼워지고 몸집이 커진 동물들에게는 단순 확산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들은 순환계를 진화시켜 세포 주변의 세포사이액(interstitial fluid)과 가스 교환 기관, 영양분 흡수 기관 사이를 기능적으로 연결했다. 순환계의 기본 구성 요소는 순환액, 혈관, 그리고 근육성 펌프인 심장(Heart)이다. 심장은 대사 에너지를 소모하여 혈액의 유압을 높이고 흐름을 만들어낸다.

2-1. 개방순환계 (Open Circulatory System)

곤충, 절지동물, 그리고 대다수의 연체동물은 순환액과 세포사이액이 구분되지 않는 개방순환계를 가진다. 이 통합된 액체를 혈림프(Hemolymph)라 부른다. 심장이 혈림프를 체강으로 밀어내면 조직 세포들이 이 액체에 직접 침수되어 물질 교환을 한다. 심장이 이완되면 혈림프는 구멍(ostia)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회수된다.

  • 장점: 낮은 유압으로 운영되므로 에너지 소모가 적고, 모세혈관망을 형성할 필요가 없어 구조적으로 단순하다. 또한 거미와 같은 일부 생물은 이 유압을 다리를 펴는 기계적 동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2-2. 폐쇄순환계 (Closed Circulatory System)

혈액이 혈관 내에만 갇혀 흐르며 세포사이액과 명확히 구분되는 방식이다. 환형동물(지렁이), 두족류(오징어, 문어), 그리고 모든 척추동물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 장점: 높은 유압을 유지할 수 있어 대규모 물자 수송에 유리하다. 이는 큰 몸집을 유지하거나 활동성이 높은 생물이 조직에 O₂와 영양분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3. 척추동물 심혈관계의 구성과 동학

척추동물의 폐쇄순환계는 흔히 심혈관계(Cardiovascular system)라 불린다. 혈관의 총 길이는 인간 성인 기준으로 지구 한 바퀴와 맞먹을 정도로 방대하며, 동맥, 정맥, 모세혈관이라는 세 가지 주요 통로로 구성된다.

  • 동맥(Arteries): 심장에서 기관으로 혈액을 실어 나르는 통로다. 두꺼운 벽을 통해 심장의 높은 압력을 견딘다.
  • 모세혈관(Capillaries): 미세한 관들이 그물망처럼 얽힌 모세혈관망(Capillary bed)을 형성한다. 매우 얇은 막을 통해 실제적인 물질 및 기체 교환이 일어나는 핵심 장소다.
  • 정맥(Veins): 모세혈관을 거친 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돌려보낸다.

혈관의 명칭은 산소 농도가 아니라 혈액의 흐름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심장에서 나가는 관은 동맥, 들어오는 관은 정맥이다. 다만, 간문맥(Hepatic portal vein)처럼 모세혈관망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특수한 구조도 존재한다. 동물의 대사 속도가 빠를수록 혈관 분포는 더 정교해지며 심장은 더욱 강력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4. 단일순환: 수중 생활의 경제적 설계

경골어류와 상어, 가오리는 1심방 1심실 구조의 심장을 통한 단일순환(Single circulation) 방식을 사용한다. 혈액은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심장을 단 한 번만 통과한다.

심실에서 분출된 혈액은 먼저 아가미로 이동하여 기체 교환을 수행한다. 고산소 혈액이 된 후 아가미를 빠져나와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 향한다. 이 방식의 치명적인 약점은 혈압이다. 혈액이 아가미의 미세한 모세혈관을 지나는 동안 유압이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온몸의 조직으로 향하는 혈류 속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류는 수영할 때의 근육 수축을 보조 펌프로 활용하여 이러한 느린 혈류를 보완한다.


5. 이중순환: 육상 진화와 고대사율의 기반

양서류 이상의 사지동물은 두 개의 독립된 순환 고리를 가진 이중순환(Double circulation) 구조를 발전시켰다. 이는 기체 교환 기관을 거치며 떨어진 혈압을 심장에서 다시 한번 가압하여 온몸으로 힘차게 뿜어주기 위한 전략이다.

  • 폐순환(또는 폐피순환): 심장의 우측에서 저산소 혈액을 폐나 피부로 보내 산소를 충전한다.
  • 체순환: 심장의 좌측에서 고산소 혈액을 받아 온몸의 조직으로 강력하게 펌프질한다.

이러한 재가압 과정 덕분에 체순환 고리의 혈압은 폐순환 고리보다 훨씬 높게 유지되며, 이는 뇌나 근육처럼 대사 요구량이 큰 기관에 정교하고 신속한 자원 배분을 가능하게 했다.


6. 이중순환의 다양성과 계통적 적응

이중순환 시스템은 각 동물의 생활 양식과 환경에 맞춰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

  1. 양서류: 2심방 1심실 구조다. 심실이 하나라 혈액이 섞일 위험이 있지만, 내부 돌출 부위가 혈류를 정교하게 분리하여 약 90%의 효율을 낸다. 특히 물속에 잠겨 폐를 쓰지 못할 때는 피부로 혈류를 돌리는 유연한 적응력을 보여준다.
  2. 파충류: 심실 내부에 불완전한 사이막이 존재한다. 악어류는 사이막이 완전하지만, 심장에서 나가는 동맥 부위에 두 순환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잠수 시 폐순환으로 갈 에너지를 체순환으로 돌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
  3. 포유류와 조류: 2심방 2심실의 완전 분리형 심장을 갖는다. 산소혈과 정맥혈이 절대 섞이지 않는 이 강력한 펌프는 내온성(Endothermy) 유지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다. 내온동물은 외온동물보다 약 10배의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10배의 자원 공급이 필요한데, 분리된 강력한 심장만이 이 물류량을 감당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조상에서 유래했음에도 조류와 포유류가 모두 4방 심장을 갖게 된 것은 수렴진화의 놀라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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