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생명의 붉은 흐름: 혈액의 구성과 심혈관계 질환의 역학

생명과학

by HtoHtoH 2026. 1. 29. 13:14

본문

폐쇄순환계 내를 흐르는 혈액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과 정보를 실어 나르는 고도로 특수화된 조직이다. 개방순환계의 순환액이 세포사이액과 직접 섞이는 것과 달리, 포유류의 혈액은 혈관이라는 폐쇄된 경로 안에서 그 성분을 엄격하게 유지하며 각 조직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본 글에서는 혈액의 복잡한 구성 요소와 그 기능, 그리고 이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발생하는 심혈관계 질환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분석한다.


1. 혈액의 기본 구성: 혈장과 세포성 성분

포유류의 혈액은 일종의 액성 결합조직이다. 혈액은 액체 기질인 혈장(plasma)과 그 안에 부유하는 세포성 요소(cellular elements)로 구성된다. 전체 혈액 부피 중 세포성 요소가 약 45%를 차지하며, 나머지 55%는 혈장이다.

1-1. 혈장: 정교한 화학적 완충 지대

혈장의 약 90%는 물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용질들은 신체 항상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무기염류(전해질):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 염소 등의 이온은 혈액의 삼투압을 유지하고 pH를 약 7.4로 고정하는 완충 작용을 한다. 이 이온 농도의 미세한 변화는 근육 수축이나 신경 신호 전달에 직접적인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 혈장 단백질: 알부민은 삼투 균형과 점성을 유지하며, 면역글로불린(항체)은 외부 침입자에 대한 방어를 담당한다. 또한, 피브리노겐은 혈액 응고의 핵심 인자다. 응고 인자가 제거된 맑은 액체를 별도로 혈청(serum)이라 부른다.
  • 운반 물질: 영양소(포도당, 비타민), 대사 폐기물, 호흡 기체(O₂, CO₂), 그리고 표적 기관으로 향하는 호르몬들이 혈장을 통해 이동한다.
생명의 붉은 흐름: 혈액의 구성과 심혈관계 질환의 역학
혈액

2. 혈액의 세포성 요소: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액 내 세포들은 각기 다른 형태적 특성을 통해 특화된 기능을 수행한다.

2-1. 적혈구(Erythrocytes): 산소 운반의 전문가

적혈구는 혈액에서 가장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는 세포다. 혈액 1µL당 약 500만~600만 개가 존재하며, 전신에 약 25조 개가 퍼져 있다.

  • 구조적 특성: 지름 7~8µm의 양면이 오목한 원반 모양이다. 이는 표면적을 넓혀 가스 교환 효율을 극대화한다.
  • 핵과 미토콘드리아의 부재: 성숙한 포유류 적혈구는 더 많은 헤모글로빈(hemoglobin)을 담기 위해 핵을 제거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가 없어 자신이 운반하는 산소를 소모하지 않고 무산소 대사로 ATP를 생성한다.
  • 헤모글로빈: 철 이온을 포함한 이 단백질은 적혈구 하나당 약 2억 5,000만 개가 들어 있으며, 각각 4개의 산소 분자와 결합할 수 있다. 즉, 적혈구 하나가 약 10억 개의 산소 분자를 운반하는 셈이다.

2-2. 백혈구(Leukocytes): 신체의 방어군

백혈구는 1µL 당 5,000~10,000개 정도 존재하며, 다섯 종류로 나뉘어 면역 반응을 수행한다. 이들은 식세포 작용을 통해 박테리아를 잡아먹거나, B세포와 T세포로 분화하여 정밀한 면역 공격을 실행한다. 순환계에 머물기보다 혈관 벽을 빠져나가 세포사이액이나 림프계에서 침입자를 감시하는 경우가 많다.

2-3. 혈소판(Platelets): 지혈의 파수꾼

혈소판은 골수의 거대핵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세포 조각이다. 핵이 없으며, 혈관 손상 시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응고 과정을 개시하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3. 혈액 응고: 생명의 유출을 막는 정교한 연쇄 반응

혈관이 파손되면 신체는 출혈을 막기 위해 복잡한 응고 연쇄 반응을 시작한다.

  1. 혈소판 응집: 노출된 콜라겐 섬유에 혈소판이 달라붙어 일차적인 플라크를 형성한다.
  2. 피브린 형성: 혈소판과 손상된 조직에서 방출된 응고 인자들이 혈장 내 불활성 단백질인 피브리노겐을 활성 상태인 피브린(fibrin)으로 전환시킨다.
  3. 그물망 형성: 실 모양의 피브린이 엉겨 붙어 혈구 세포들을 가두고 단단한 응혈(clot)을 만들어 상처를 밀봉한다.

유전적 결함으로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질환이 혈우병이다. 반대로 혈관 내에서 불필요하게 혈액이 굳어 흐름을 막는 것을 혈전(thrombus)이라 하며, 이는 심각한 심혈관계 사고의 원인이 된다.


4. 줄기세포와 혈액 세포의 재생 메커니즘

혈액 세포들은 수명이 짧아 끊임없이 교체되어야 한다. 적혈구는 약 120일 동안 순환하다가 간과 지라의 식세포에 의해 파괴되며, 이때 철 이온은 새로운 적혈구 생성을 위해 재활용된다.

4-1. 다분화능 줄기세포

모든 혈구 세포는 골수의 다분화능 줄기세포(multipotent stem cell)에서 유래한다. 이 세포는 필요에 따라 림프성 또는 골수성 세포로 분화하며 신체의 혈액 자원을 충원한다.

4-2. 적혈구 생성 조절(EPO)

신체는 음성 되먹임 기작을 통해 적혈구 숫자를 정밀하게 조절한다. 조직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신장은 적혈구생성인자(EPO)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골수의 적혈구 생산을 촉진한다. 일부 운동선수들이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EPO를 오용하는 '혈액 도핑'은 혈액의 점성을 과도하게 높여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5. 심혈관계 질환: 현대인의 소리 없는 위협

심혈관계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전적 요인도 있으나 흡연, 운동 부족, 고지방 식단 등 생활 습관이 발병률을 결정적으로 높인다.

5-1. 동맥경화(Atherosclerosis)

동맥 내벽에 지질과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탄력을 잃는 현상이다.

  • 플라크 형성: 손상된 내벽에 백혈구가 달라붙어 콜레스테롤을 섭취하면서 거대한 플라크를 형성한다.
  • 협심증: 관상동맥이 부분적으로 막혀 심장 근육에 산소가 부족해질 때 발생하는 가슴 통증이다. 이는 심각한 사고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5-2. 심장마비와 뇌졸중

  • 심장마비(심근경색):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완전히 막혀 심장 근육 세포가 괴사하는 상태다. 산소 공급이 중단된 심장 근육은 순식간에 기능을 잃으므로 즉각적인 CPR이 생존을 좌우한다.
  • 뇌졸중: 뇌로 가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 조직이 손상되는 것이다. 손상 부위에 따라 마비, 언어 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6. 진단과 관리: 콜레스테롤과 염류

현대 의학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혈중 지질 성분과 염증 수치를 정밀하게 관리한다.

6-1. LDL과 HDL의 균형

  • LDL(저밀도 지질단백질):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을 쌓아 플라크 형성을 촉진하므로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린다.
  • HDL(고밀도 지질단백질): 혈관의 콜레스테롤을 수거하여 간으로 보냄으로써 플라크 형성을 억제하는 '좋은 콜레스테롤'이다.
  • 운동은 HDL 수치를 높이고 LDL 수치를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스타틴 계열의 약물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여 LDL 수치를 관리하는 데 널리 쓰인다.

6-2. 고혈압(Hypertension)

수축기압 140 mmHg, 이완기압 90 mmHg 이상인 상태를 말한다. 만성적인 고혈압은 혈관 내벽을 지속적으로 손상시켜 동맥경화를 촉진하고 심장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6-3. 새로운 지표: C-반응 단백질(CRP)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혈관 내의 염증 반응이 혈전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간에서 생성되는 CRP 수치는 신체의 염증 상태를 반영하며, 이를 통해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항염증 작용을 하는 아스피린의 소량 복용이 심혈관 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론: 지속 가능한 순환을 위하여

혈액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연결하는 생명선이다. 적혈구의 정교한 산소 운반 시스템과 혈액 응고의 방어 메커니즘은 생명을 유지하는 경이로운 설계다. 그러나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한 동맥경화와 고혈압은 이 시스템을 내부에서 파괴한다. 혈액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관리하는 것은 단순히 질병을 피하는 것을 넘어, 생명의 붉은 흐름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