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계에서 척추동물만이 보유한 후천성 면역(adaptive immunity)은 생존을 위한 가장 고도화된 방어 전략이다. 선천성 면역이 적의 침입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막아내는 1차 방어선이라면, 후천성 면역은 특정 병원체를 정밀하게 조준하여 타격하고 그 정보를 기억하여 훗날의 재침입에 대비하는 '정예 특수부대'와 같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두 종류의 백혈구, 즉 B세포와 T세포라 불리는 림프구(lymphocytes)가 있다. 본 글에서는 이들 림프구가 어떻게 탄생하고, 항원을 인식하며, 유전자 재배열을 통해 무한한 다양성을 확보하는지, 그리고 면역 기억을 통해 어떻게 장기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지 그 심층적인 기작을 살펴본다.
모든 혈액 세포와 마찬가지로 림프구 역시 골수의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에서 기원한다. 하지만 이들이 성숙하는 장소에 따라 그 운명과 명칭이 결정된다.
골수에서 생성된 미성숙 림프구 중 일부는 혈류를 타고 심장 윗부분 흉강에 위치한 흉선(thymus)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성숙 과정을 거친 세포들을 흉선의 앞글자를 따서 T세포라고 부른다. T세포는 주로 세포 매개 면역 반응을 담당하며, 감염된 숙주세포를 직접 파괴하거나 다른 면역 세포의 활성화를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골수에 그대로 남아서 성숙 과정을 마치는 림프구는 B세포가 된다. 'B'라는 명칭은 본래 조류의 항문 근처에 있는 면역 기관인 파브리키우스낭(Bursa of Fabricius)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포유류의 경우 골수(Bone marrow)에서 성숙하므로 골수의 B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B세포는 주로 항체를 분비하여 체액 내의 병원체를 무력화하는 체액성 면역 반응을 주도한다.

후천성 면역은 선천성 면역과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천성 면역의 성공적인 수행이 후천성 면역을 촉발하는 필수 전제 조건이 된다.
후천성 면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접촉한 병원균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약 2,400년 전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역병 당시 "병을 한 번 이겨낸 사람은 다시 공격받지 않는다"고 기록하며 이 현상을 통찰했다. 예방접종(백신)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인위적으로 항원을 노출시켜 수십 년간 지속되는 면역 기억을 형성함으로써 실제 감염을 막는다.
감염 초기, 선천성 면역을 담당하는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는 병원체를 섭취한 후 시토카인(cytokines)이라는 화학 신호 물질을 분비한다. 이 물질은 멀리 있는 림프구를 감염 부위로 불러모으고 활성화시킨다. 또한, 이들 식세포는 섭취한 병원체의 조각을 자신의 표면에 전시함으로써 B세포와 T세포가 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림프구에 의해 특이적으로 인식되어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모든 외래 분자를 항원(antigen)이라 한다. 대개 단백질이나 다당류로 이루어진 거대 분자들이다.
단일 B세포나 T세포의 표면에는 약 10만 개의 동일한 항원수용체가 존재한다. 이 수용체들은 항원의 전체가 아닌, 에피톱(epitope, 항원결정기)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특정 부위만을 인식한다. 하나의 항원에는 여러 종류의 에피톱이 존재할 수 있으며, 각 에피톱은 그에 맞는 특이적인 수용체를 가진 림프구에만 반응을 유도한다.
B세포 수용체(BCR)는 4개의 폴리펩티드 사슬이 이황화결합으로 연결된 'Y'자 모양의 구조물이다.
T세포 수용체(TCR)는 α 측쇄와 β 측쇄라는 두 개의 폴리펩티드 사슬로 구성된다. B세포 수용체와 달리 항상 세포막에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며, 항원이 단독으로 있을 때는 결합하지 못하고 숙주세포의 MHC 분자에 의해 제시된 항원 조각만을 인식한다.
T세포가 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주조직적합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라는 단백질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숙주세포 내부에서 분쇄된 펩티드 항원이 MHC와 결합하여 세포 표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항원제시(antigen presentation)라 한다.
인간의 유전체에는 약 2만여 개의 유전자가 있지만, 우리는 수백만 가지 이상의 항원을 구별해낼 수 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열쇠는 VJ 재조합이라 불리는 유전자 재배열에 있다.
면역글로불린 유전자는 여러 개의 V(variable), J(joining), C(constant)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림프구 성숙 과정에서 재조합효소(recombinase)는 이 수많은 조각 중 하나씩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연결한다.
한 번 일어난 DNA 재배열은 영구적이다. 따라서 특정 수용체를 갖게 된 림프구가 분열하여 만든 모든 딸세포(클론)는 부모 세포와 똑같은 항원 특이성을 공유하게 된다.
무작위적인 유전자 재배열은 자칫 우리 몸의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자기반응성' 수용체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면역계는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친다.
골수나 흉선에서 성숙 중인 미성숙 림프구 중 자기 항원과 결합하는 세포들은 아폽토시스(apoptosis, 세포 사멸)를 통해 제거되거나 무반응 상태로 유도된다. 이 과정을 통해 오직 비자기(non-self)만을 공격하는 정예 세포들만 살아남아 전신으로 방출된다. 이 자기관용 시스템이 무너지면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다발경화증 같은 자가면역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
특정 항원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 수많은 림프구 중 오직 그 항원에 맞는 수용체를 가진 극소수의 세포만이 활성화된다. 이를 클론선택(clonal selection)이라 한다.
활성화된 림프구는 폭발적으로 분열하여 두 종류의 세포군을 형성한다.
후천성 면역 체계는 유전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성 확보, 자기와 비자기를 구별하는 엄격한 선별, 그리고 한 번의 경험을 평생의 자산으로 만드는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다. B세포와 T세포가 주도하는 이 복잡한 상호작용은 분자 수준에서의 DNA 재배열부터 세포 수준에서의 MHC 항원제시, 그리고 개체 수준에서의 면역 기억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이러한 후천성 면역의 기본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백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암 치료나 이식 거부 반응 제어와 같은 현대 의학의 난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림프구의 발달과 활성화 기작은 단순한 생물학적 지식을 넘어, 생명이 외부 환경의 끊임없는 위협에 맞서 어떻게 자신을 완성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 삼투조절: 생물체의 수분 및 용질 평형 유지 기작 (0) | 2026.02.04 |
|---|---|
| 정교한 이중 방어망: 체액성과 세포성 면역의 통합 기작 (0) | 2026.02.03 |
| 생명의 원초적 방어벽: 선천성 면역의 진화와 기전 (0) | 2026.02.02 |
| 생명의 화구: 호흡색소를 통한 기체 수송과 극한 환경으로의 생리적 적응 (0) | 2026.02.01 |
| 생명의 펌프: 환기 작용의 진화와 호흡 조절 메커니즘 (0) | 2026.01.31 |